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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련 글

책이 혁명을 만들었는가 - 기존 견해

 토크빌은 작가들이 그들의 사상뿐 아니라 기질과 성격까지도 사람들에게 전수하여, 혁명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문학의 습성을 정치 영역에 끌어들였다고 말하고 있다텐 역시 외설문학, 신학 서적 등 도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모르네 역시 철학이 책을 통해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 사상가들의 생각 속에는 독서는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서, 책이 의도하는 대로 독자들을 완벽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자리한다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그들이 책으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에 대한 증거는 매우 다양해서 실제로 당시 프랑스의 독서 관련 모습을 살펴보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자료에 따르면, 17세기 말과 18세기에 독자들이 매우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식자층의 증가 보다는 책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던 사회계층에게 인쇄매체가 침투했다는 것이다. 18세기 장인과 상점 주인들의 전에는 책을 소유하지 않았던 계층) 서재의 크기가 증가하고, 재산 목록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게 증가했다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식자층에 있어서도, 책장의 크기가 수십 권을 꽂을 수 있던 크기에서 100권에서 300권까지 놓을 수 있는 모양으로 변모하면서, 모든 계층에 있어 책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러한 독서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독서방이나 책 대여점과 같은 서적의 새로운 유통방식도 등장하게 된다. 독서방에서는 10~20리브르의 연회비만 내면 구독료가 비싼 관보나 신문, 사전, 최신 문학, 철학 서적 등을 자유로이 읽거나 대여 받을 수 있었다.

 또한 18세기 서적 사업은 독자의 증가와 더불어 예전과 비교해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내용의 서적을 제공하였다. 출판 허가를 받은 책들의 출판 중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종교 서적의 감소였다. 17세기 말 파리에서 서적출판의 2분의 1을 차지했던 종교서적은 1750년경에는 서적 출판량의 4분의 1, 1780년에는 10분의 1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와 상대적으로 과학·예술 서적의 비율은 크게 증가해,1720~1780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하였다. 과학과 예술 서적의 증가는 지식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비평과 개혁의 야망을 제공하였다. (Francois Furet "La librairie du royaume de France au 18 siecle) 그러나 이러한 출판 허가가 된 책들은 18세기 프랑스 국민들에게 제공된 책들의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도서전문가들이 계몽철학적이라고 분류한 엄청난 양의 책들이 비밀리에 수입되어 은밀히 판매되었으며, 당국은 이 책들을 금지하고 적극적으로 단속하였다. 이러한 책들은 크게 일반적 의미의 철학서, 고전뿐 아니라 최신작까지 망라하는 외설문학서, 모든 형태의 풍자·중상 비방문·추문 등의 잡다한 서적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책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가끔 고압적이 부패한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참고불법 거래되었던 책에는 해적판과 금서가 있는데 해적판은 인가가 난 서적을 출판권이 없는 사람이 인쇄해 판매하는 것으로 국가에 의해 공인된 내용, 왕에 대한 위협은 아니었다. 금서는 종교적·정치적 권위에 대한 위협적인 내용을 싣고 있어 금지된 서적. 따라서 해적판 유통업자들은 그저 출판권을 다시 원래 권리자에게 양도하거나 때로는 왕의 관용 하에 공개적으로 유통되기도 하였으나 금서는 감옥에 갇힐뿐더러, 책 역시 감옥에 보관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금서의 종류를 살펴보자. 이 책에서는 세 개의 금서 목록을 제시 하고 있는데 첫 번째 목록은 파리 서적상 무로가 1777년에 작성한 것이다. 이 목록에는 서적(고전과 최근저작들), 정치를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저작, 철학서 등이 포함되었으며, 철학서의 수가 가장 많았다. 두 번째 목록은 몽타르지의 상인 질이 뇌샤텔 인쇄협회에 보댄 주문서로, 외설문학이 여전히 다수이지만, 철학 서적도 크게 증가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목록은 트루아에서 비밀 서적 유통상인인 브뤼자르 드 모브랭의 목록인데 여기서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앞선 두 목록과는 달리 모브랭의 주문서에는 계몽철학의 교리서나 계몽철학서를 요청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귀족, 고등법원, 그리고 궁극적으로 왕까지 비난하는 비판문학을 선호하였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이 세 목록에서 우리는 계몽철학서적과 정치적·외설적 비방문이 서적의 거래에서 실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로버트 단튼은 앙시앵 레짐기의 마지막 20여 년 동안에 유통량과 폭력성이 점차 증가하였던 고발 문학들은 군주제의 신화를 손상시키고, 군주제의 표상을 심각하게 변형시켜, 왕을 국민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도록 보장해 왔던 신념 체계의 소멸에 깊게 관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 팸플릿들은 혁명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1789년을 예측하지도 않았으며, 군주제를 파괴할 수도 있는 정치·사회적 부패에 대한 깊은 토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의 눈에 군주제를 정당하게 보이도록 했던 신화들을 축소시켰고, 그들의 상징을 탈신성화하여 다가올 사건들을 준비한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책이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혁명을 일으키게끔 의도했다는 맨처음 세 사상가들(토크빌, 모르네, )의 주장은 매우 타당성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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