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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혁명을 만들었는가 - 기존 견해에 대한 반론

 메르시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기존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첫째로 철학 서적이 유통되던 사회적 영역은 외설 문학서적이 유통되었던 영역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었다. 대중들 대부분이 거의 이해할 수 없었던 철학 서적들은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사고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의 효용성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메르시에는 고발 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셋째로 메르시에는 대중들의 의심을 꼽았다. 대중들은 비방 팸플릿 속의 풍자적 공격을 별로 믿지 않고, 단지 재미로 읽었다고 한다. 비방문과 시사적인 팸플릿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았으며, 독서가 반드시 믿음으로 귀결되지 않고 그저 흥미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메르시에의 논리에 따르자면, 정치적 비방 팸플릿의 확산과 군주제의 이미지 파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또한 철학서적과 혁명적 사상을 연결시키면서 주의해야할 다른 점은 철학서적을 탐독하던 계층이 실제 혁명적 사건에 직면해서는 계몽철학과 오히려 정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루소의 저작은 도시의 빈민, 하층 계급에서부터 귀족층까지 전 계층에 의해 읽혀졌다. 백과전서의 독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계몽사상의 상징적 서적인 백과전서는 실제로 매우 비싼 가격 때문에 전통적인 엘리트 사회 구성원들(명사들)이 구입·소장하였고, 이 책을 읽은 대다수의 계층이 혁명에 대해서 무관심하였거나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에서, 또한 입증할 수 있다. 혁명 후 혁명 정부에 의해 수감된 죄수들이나(구체제 지배 계층) 망명자들의 소유 도서 역시 혁명의 주역들이 읽은 책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보아도 프랑스 사회와 군주·군주제 사이의 간격을 벌리는 데 계몽철학서적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믿는 것은 아마도 위험한 일일 것 같다.

 군주에 대한 미움은 일상적인 관행들, 일상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생겨나게 되었다. (국왕식 a la royale 이라는 표현이 정육점, 신발가게 등 일상적인 곳에서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 중고 휘장들이 담배가게나 선술집에 걸리게 된 것 등으로 인해 왕에 대한 경외감이나 신성함 등이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계몽철학서적은 이미 사람들 마음 속에 군주에 대한 상징적 권한과 애정이 박탈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단절을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단절로 인해 생겨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책들이 이러한 커다란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샤르띠에는 혁명을 준비하고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다양한 작가와 저작들을 선택,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책을 만든 것은 혁명이었으며, 그 반대가 아니다. 혁명이 어떤 저작들이 혁명의 기원으로 미리 계획되고 예감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처음에 제기한 주장들을 무효화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독서가 점차 개인주의화 되어 가면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독서의 행태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문제의 핵심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철학서적의 내용이 아니라, 독서의 새로운 행태에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종교적·정치적 질서와 부합하는 내용일지라도 새로운 독서 행태는 복종과 권위의 연계에서 자유로워져서 비판적인 태도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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