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관련 글/역사

2차 세계대전에 따른 영국의 사회복지 변화

 제 2차 세계대전은 영국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1941년부터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전쟁 중에 런던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공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굴러 떨러져 죽었다. 이것이 국립노인복지협회의 형성을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며, 오늘날 Age Concern이란 기관으로 남아 있다.

 리차드 티트머스에 의하여 자세하게 쓰여진 제2차 대전 기간 중 사회정책의 역사는 거의 4백만에 달하는 어머니와 아동의 소개, 집 없는 자의 보호, 그리고 응급의료서비스 등 3개 주제로 구분되어 있다사실 박탈과 위험을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사회계층간 격차를 치유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 감각이 더욱 공공연하게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요구하게 되었다.

 1940년 처칠은 노동당과 함께 연립정권을 이끌어가고 있었으나, 1945년 카키선거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다수의식을 가진 노동당정부가 등장하여 복지국가를 창설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노동당으로 권력이 옮겨 가게 된 주요한 계기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집단주의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소규모 가족생활에 대한 굉장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욕망과는 전혀 다른 단지 '다시는 안돼' 라는 정신이었다.

 1930년대의 사회복지정책을 지배했던 두 개의 서비스는 전쟁상태로 인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첫째, 구빈법이 마침내 사라졌다. 1940년대에는 실업지원국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지원국에게 권한이 이양되었고, 여기에는 전혀 다른 유형의 고객을 보호하게 되었다둘째, 1940년 가구자산조사는 그동안 많은 반대를 일으켰기 때문에 개인별 자산조사로 바뀌었다. 여기에 대한 직접적 이유는 모든 가족이 징병, 노동명령으로 흩어지고, 여러 가구가 한 세대로서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사회변화를 촉진시켰다면 가치 역시 변화시켰다. 전시의 사회 가치는 원시적이다. 즉, 전쟁서비스가 우선이고, 이를 지원하는 서비스, 즉 석탄, 광산, 중기 및 무기제조가 두 번째이고, 세 번째는 다음 세대의 전쟁과 지원서비스의 주체가 될 아동들과 그 어머니이고, 그 나머지는 전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