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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기독교 부활과 불교 윤회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졌고 빈 무덤을 몇몇 여인들이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얼마 후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되고 예수를 박해하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멀게 된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은 뚜렷한 증거와 목격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윤회의 경우 윤회를 했다는 뚜렷한 증거, 목격자 등 흔적이 없다. 우리가 다음 생에 윤회하여 개미로 태어나든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든지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윤회했으며 어떻게 윤회했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예수의 부활과 윤회는 연속성의 유무에서 차이점이 있다. 예수의 부활의 경우 과거 자신의 육체에서 부활하여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과거 삶을 연장시킨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윤회는 과거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탄생을 하는 것이다. 즉 윤회는 비록 같은 영혼이지만 윤회를 거치며 자신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육체와 정신이 변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과 윤회는 목적의 유무를 통해서도 차이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의 경우 인간 구원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예수가 인간 세계에 다시 오신 것이지만 윤회는 무엇을 위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우리가 윤회할 수 있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실존, 즉 존재의 의미가 본질이라는 목적에 앞서있다. 따라서 존재하기 전에 목적을 가질 수 없으며 이는 곧 태어나기 전에 아무런 목적을 갖지 않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또 다른 차이점은 예수의 부활에 예수 자신의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예수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부활을 하였지만 윤회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부활과 윤회의 차이점은 부활하신 예수가 존재하는 시, 공간의 차이이다. 참고서적 <기독교란 이런거야>에서 나타나듯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가 존재하는 현재와 이 지상공간에도 나타나셨지만 이 시,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의 세계에 계신다. 역설적이지만 예수는 부활 승천하여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 현존하여 우리와 영원이 함께 계시는 것이다. 반면 윤회로 새로운 탄생을 겪은 한 존재는 그 존재가 지닌 생명의 수명에 따라 또 다시 사라짐을 겪는다. 그 영혼은 비록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윤회하지만 연속성이 결여된 윤회는 진정 영원 속에 존재를 표현할 수는 없다.

 예수의 부활과 영혼불멸에 기초한 윤회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연속성과 예수의 의지라 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은 윤회와는 달리 자신의 의지로 부활하여 과거 자신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부활의 흔적도 남겼지만 윤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해지며 연속성이 결여되어 자신이 윤회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 자신의 모습과 기억은 현재의 자신 속에 남아 있지 않아 같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같은 존재라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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